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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회 김천학 콜로키움/ 김호창 화백 발표> '김천 근대 미술의 동향'

박인기(경인교육대학교 명예교수/칼럼니스트)

뉴 포커스TV | 기사입력 2024/09/28 [21:33]

<제14회 김천학 콜로키움/ 김호창 화백 발표> '김천 근대 미술의 동향'

박인기(경인교육대학교 명예교수/칼럼니스트)
뉴 포커스TV | 입력 : 2024/09/28 [21:33]

김천 연구 모임인 ‘김천학(金泉學) 콜로키움’의 제14차 연구 발표회가 9월 26일 김천대학교에서 열렸다. 김천 출신 한국화 화가인 김호창 화백이 ‘김천 근대 미술의 동향’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맡아 주었다.

 

 

▲     ©김천출신 한국화 화가 김호창 화백

 

이날 발표회는 김천대학이 ‘김천학 연구’를 학문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중시하고, 지역 대학으로서 김천학 발전을 지향하려는 윤옥현 총장의 뜻에 따라 김천대학에서 이루어졌다.

 

발표자 김호창 화백은 풍부한 강단 경험과 작품 활동에서 다진 전문적 식견에 더하여 향토 김천에 대한 문화적 사랑을 쏟아, 차분하면서도 열정이 담긴 어조와 호소력 있는 콘텐츠로 청중을 매료시켰다. 그는 선각(先覺) 예술가의 위상에 있는 ‘김천의 미술가’들을 조명하면서도, 동시에 ‘근대’라는 시대적 요소를 중요 포인트로 설정하였다.

 

▲     ©김천연구모임 회장 박인기 교수

 

그에 따르면 ‘근대’는 세계사적 의미를 드러내는 시대 개념이면서, 식민지 조선 땅에서는 전(前) 근대 봉건의 가치를 넘어서서 새로운 가치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려는 개명(開明)의 시대 의식이었다. 문화 예술인에게 근대 의식은 예술 창작의 개성과 자유와 작가의 주체적 자아를 예술적으로 각성하고, 현실 세계를 반영하려는 예술 정신으로 나타났다. 김호창 발표자는 우리 미술사에서 근대의 자질이 뚜렷해지는 시기를 1930년대로 보았다.

 

▲     ©

 

김호창 발표자는 당시 이 나라 미술계에 ‘근대의 패러다임’을 선도했던 움직임을 폭넓은 맥락으로 살피는 데서 김천 근대 미술의 생성과 흐름을 정확하게 읽을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발표자는 그 점을 전제하면서 근대를 앞장서 열어서 나아간 한국의 대표적인 화가라 할 수 있는, 대구 출신의 천재 서양화가 이인성(李仁星, 1912~1950)년)과 칠곡 출신의 독보적인 예술가 이쾌대((李快大, 1913~ 1965)에 대한 이해가 중요함을 역설했다. 그리고 이들 미술 세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김천 관련 미술가인 배렴, 최근배, 김용준 등의 작품 세계와 그 ‘근대성(modernism)’을 들여다볼 수 있음을 역설하였다.

 

▲     ©

 

김호창 발표자는 근대 김천 미술의 여러 양상을 건축, 서예 등의 징후들에서 찾아보는 데서 시작하여, 김천과 깊은 연관이 있는 근대 화가 3인을 집중 조명하는 방식으로 논의의 중심을 열어 갔다. 제당(霽堂) 배렴(裵濂, 1912~1968), 목랑(木郞) 최근배(崔根培, 1910~1978), 근원(近園) 김용준(金瑢俊, 1904~ 1967) 등이 바로 그 인물이다. 김호창 발표자는 이들 작가의 예술가적 생애에 결부하여 이들이 생산한 작품이 지닌 근대 회화로서의 미학적 자질을 개별 작품 단위로 시민들이 알기 쉽게 해석해 나감으로써 1930년대 근대 김천 미술에 대한 공감의 분위기를 마련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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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당(霽堂) 배렴(裵濂, 1912~1968)의 회화와 관련해서, 발표자는 <연봉백운>, <추강수조> 등의 작품에 드러난 기운생동(氣韻生動)의 회화 미학을 언급하며, 제당이 <수산만추>(1967)에 이르러 스승인 청전 이상범을 벗어나는 경지를 보였다고 했다.

목랑(木郞) 최근배(崔根培,1910~1978)와 관련해서는 그가 1940년 김천고보 교사로 부임하여 1965년 효성여대 교수가 되기까지, <농악>, <장독대 위 빨래>, <금릉 못의 가을>, <우리 마을> 등 김천 지역 일대의 풍경을 근대의 화풍으로 담아낸 작품을 소개해 주었다. 김호창 화백은 최근배의 그림에 스며있는 향토색 짙은 서정성을 음미할 수 있도록 주문했는데, 이 대목에서 참석자들의 공감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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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산 출신 미술가 근원(近園) 김용준(金瑢俊, 1904~ 1967)과 관련해서 김호창 발표자는 김용준의 남다른 근대 의식을 주목하였다. 또한 그의 문화적 통찰력과 예술적 소통역량을 높이 평가하였다. 김용준은 수필가로서 글을 쓰는 문인이기도 했고, 식민지 근대에서 문화 예술계에 폭넓은 교류 인맥을 가지고 작품 활동을 했던 인물이었으나, 해방 후 분단 이데올로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월북함으로써 예술가로서는 불행했음을 시사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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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창 발표자는 발표를 마무리하면서 결론의 명제로 세 가지를 말하였다. 역사를 모르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 문화 예술을 모르면 민족이 흥할 수 없다. 미술은 인간의 삶이자 미적 즐거움(快感)의 원천이다. 종합하면, 미술과 시대의 사조를 읽는 상위인지(上位認知, meta-cognition)를 시민들에게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     ©

 

발표 뒤 청중석의 시민들은 질의 및 논의 시간을 가졌다. 참석자들은 시민의 문화 예술 인프라로서 시민 친화적인 미술관과 박물관이 더 다양하게 건립, 운영되기를 소망했다. 또 소비적 물질문명의 생태를 극복하기 위해서 시민의 정신문화를 키우는 문화 복지와 교육 복지의 정책이 구현되기를 기대하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     ©진행을 맡은 김창겸 김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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