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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포커스TV

<칼럼/마음의 발견10> 김천말의 속살

박인기(경인교육대학교 명예교수/칼럼니스트)

뉴 포커스TV | 기사입력 2024/09/21 [11:59]

<칼럼/마음의 발견10> 김천말의 속살

박인기(경인교육대학교 명예교수/칼럼니스트)
뉴 포커스TV | 입력 : 2024/09/21 [11:59]

 우리가 쓰는 말은 겉으로 나타내는 의미의 차원이 있는가 하면, 속으로 숨겨두어 쉽게 드러나지 않는 속살 같은 부면(部面)이 있다. 김천말과 더불어 오래 살아보고 긴 세월 그 말이 품고 있는 뜻과 정서를 나누어 보지 않으면 좀체 포착할 수 없는 것이 김천말의 속살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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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말은 충북 영동 지역(황간)의 말과 접하고 있다. 그러면서 충청도와 경상도란 경계를 경상도 쪽에서 보여주고 있는 말이 바로 김천말이다. 경상도 말 전체의 분포 양상으로 보면 충청도 말과의 중화 내지는 접변이 두드러지는 말이 김천말이다. 더구나 추풍령이란 주요 통로가 우리 김천을 통하게 되어 있어서 그러한 접변의 작용은 왕성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김천말은 경상도 말의 첫 번째 특성으로 지적되는 ‘우악스러움’에서는 얼마간 벗어나 있다. ‘왁자지껄하다’는 것도 김천말의 특성으로 꼽기에는 무언가 적절치 않다. 이는 상주말이나 문경말 등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나, 영동 말이 충청도의 느리고 쳐진 억양을 약간씩(다른 충청도 지역에 비하면 상당히 약함) 거느리고 있음이 비하여, 김천말은 근본적으로 느리고 쳐지는 억양을 토대로 하고 있지는 않다.

 

또 충청도 말은 문장을 끝낼 때 쓰는 어미(어말 종결어미)인 ‘-요’나 ‘-유’가 사용되는데, 김천말은 문장을 끝낼 때, 다른 지역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여’ 어미가 빈번히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여’ 어미를 자주 쓰는 김천 사람을 놀리는 뜻으로 “자꾸 ‘여’,‘여’ 카지 말아여.”하는 말이 생기기까지 했다.

 

김천말은 상주말과도 섬세한 구석에서는 차이를 가진다. 대표적인 예가 묻는 말의 시작 부분 억양이다. 상주 지역의 말이 묻는 말의 시작 부분을 빠른 속도의 강한 억양으로 발화(發話)하는데 비해서, 김천말은 묻는 말의 시작 부분이 평범한 속도와 보통 억양으로 발화한다. 예컨대 “어데 갔다 오십니까?”라는 말을 상주식 억양으로 하는 것과 김천식 억양으로 하는 것을 비교해 보면 그 차이를 엿볼 수 있다.

 

대구말과 김천말은 말의 속도와 어조에서 비교적 쉽게 분간이 된다. 대구말은 김천 말에 비하면 확실히 속도가 빠르다. 그리고 억양의 굴곡도 훨씬 요란하다. 받침 부분의 발음이 정확하지 않고 두루뭉실 그냥 넘어가는 것도 대구말이 김천말보다는 심한 편이다. 격한 감정을 표현하는 말을 할 때 보면 이러한 차이는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거창 말과 김천말은 소백산맥 줄기의 대덕산과 우두령을 경계로 하여 차이가 생겨 난 말이다. 외견상으로는 별반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거창 말은 김천 말에 비해서 오히려 대구말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다. 억양도 얼마간 굴곡이 있고, 말의 속도도 다소 빠르다. 특히 미래의 사실이나 의지적 표현을 나타내는 말인, ‘-할 것이다.’를 표현하는 방식이 약간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내일 보리밭 매는 일은 내가 할라케여.” 이것이 김천말의 일반형이다. 이에 비해서 거창 쪽의 말은 “내일 보리밭 매는 일은 내가 할끼다.”로 나타난다.

 

흔히 서울 사람들이 경상도 말도, 특히 경상도 여성들의 말에서, 그 나름의 애교가 있다고 하는데, 이는 아마도 대구말이나 부산말이 보여주는 억양의 굴곡을 두고 하는 것이라 느껴진다. 이렇게 보면 김천말의 억양은 ‘애교용’으로는 적절하지 않은 것일까. 그러나 애교에 연연해할 필요는 없으리라. 진정한 애교는 진실의 나무에서만 피울 수 있는 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진실과 사랑이 만나는 꽃에서 피어나는 말이면 한 떨기 애교가 될 수 있다. 요컨대 애교란 만들기 나름이고 보아주기 마련이 아니겠는가.

 

고향 사람들의 생활 감성과 고향의 추억을 오랜 세월에 걸쳐 익혀 낸 것이 고향의 말이라 할진대, 김천말의 속살은 그런 점에서 지역 문화의 자질을 숨어서 섬세하게 거느리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소중하고 아름다운 문화재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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