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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짱 : 박인기(경인교육대학교 명예교수/수필가)

칼럼 / 마음의 발견

뉴 포커스TV | 기사입력 2024/06/19 [02:27]

팔짱 : 박인기(경인교육대학교 명예교수/수필가)

칼럼 / 마음의 발견
뉴 포커스TV | 입력 : 2024/06/19 [02:27]
 법원과 검찰청이 있는 곳에는 판사와 검사도 있지만, 변호사도 있다. 그곳에서 재판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서울 지하철의 교대역도 그런 곳이다. 교대역의 다른 이름은 법원검찰청 역이다. 이곳 지하철역 내의 이동 통로에는 이름난 변호사들을 홍보 마케팅하는 광고판들이 많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광고판의 주 내용은 해당 변호사의 인물 사진이 차지한다.
 

 

이들이 사진 속에서 취한 포즈는 너나없이 한결같다. 거의 모두가 팔짱을 낀 자세이다. 그리고 상반신을 뒤로 살짝 젖힌 자세이다. 사진을 찍는 쪽도 광고 전문가들이니 그런 자세를 요청했을 수 있다. 그래도 그 자세 말고, 자신이 좋아하는 자세로 찍겠다고 할 수 있을 터인데, 그런 사진은 보이지 않는다. 찍히는 쪽에서도 그 팔짱 자세가 마음에 들었다는 것일까.

 

팔짱을 끼고 상반신을 젖힌 포즈는 적극적인 자세이다. “내게 맡기십시오. 확실한 승리를 보장합니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광고판을 만든 쪽에서도 그런 효과를 노렸을 것이다. 그러나 사진의 이미지는 이미지일 뿐이다. 팔짱이 주는 자신감 느낌과 실제 그분들의 실력 여부는 별개의 문제일 수 있다.

 

나는 이 마케팅 광고판의 자세들이 너무 당당 일변도로만 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요즘은 저 광고판 말고도, 다른 선전 화보에 나오는 인물들도 팔짱 자세가 대세가 되었다. 심지어 가족사진 등에도 팔짱 낀 자세를 볼 수 있다. 팔짱은 자신감과 당당함을 나타내는 우리 사회의 약속된 기호(記號, sign)라도 된 듯하다.

 

팔짱을 끼었다고 모두 당당 이미지만은 아니다. 사자성어에 수수방관(袖手傍觀)이라는 말이 그걸 증명한다. 옛날 넓은 소매의 두루마기를 입고 난 뒤에, 오른쪽 소매 밑으로 왼손을 넣고, 왼쪽 소매 밑으로 오른손을 넣어, 좀 느슨하게 좀 쳐지게 팔짱을 낀 듯한 모양새를 하였는데, 이를 두고 수수(袖手)’라고 했다.

 

그런데 이 수수(袖手)’방관(傍觀)’이란 말과 붙어서 수수방관(袖手傍觀)이라는 말을 만든다. 수수방관, 그저 팔짱 끼고 구경이나 하겠다는 뜻이다. 내 손이나 팔은 사태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마음이다. 그러니 팔짱도 팔짱 나름이다.

 

팔짱을 끼어서 어떤 심리적 자세를 나타내는가 하면, 팔에다 무언가를 두름으로써 어떤 사회적 파워를 보여주기도 한다. 상을 당한 상주의 팔에 끼는 완장은 그가 장례의 중심에 있음을 표상한다. 소설가 윤흥길의 작품 <완장>은 권력의 폭력성과 속물 의식을 주인공 팔에 찬 완장을 통해서 고발한다. 그런가 하면 책무와 영광을 밖으로 끌어올리는 완장도 있다. 국가대표 축구팀의 주장 손흥민 선수가 팔에 차는, ‘주장 완장은 국민의 사랑과 자랑으로 각인된다.

 

나는 30여 년 전부터 구족(口足) 화가들의 그림 작품을 즐겨 구하여, 연말연시 지인들에게 보내는 연하 카드로도 사용하고, 주변 가까운 사람들의 생일 카드로도 애용하였다. ‘구족(口足) 화가란 사고나 장애로 두 팔을 못 쓰게 되어 입이나 발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를 말한다. 이분들 중에는 노력 끝에 대학의 교수가 된 분도 있다.

 

 

오순이 화백은 어릴 때 집 근처 친구들과 놀다 열차에 치여 두 팔을 잃은 뒤 초등학교 학년 때 미술 선생님의 도움으로 동양화를 그리기 시작해 단국대학교 동양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타이완 중화미술원을 유학하고, 뒤에 단국대학교 예술대학에 전임교수가 되었다. 한국구족작가협회에는 이런 노력으로 팔의 상실을 극복하려는 분들이 많다. 팔을 잃어 팔짱을 끼지 못해도 당당함과 자신감을 지키는 그분들 마음이 훌륭하다.

 

그러나. 오늘 이 순간도 세계는 전쟁의 폭력으로 지옥을 방불한다. 현대전은 사람을 살상하는 양태가 더 대량적이고 더 처참하다. 팔로써 활을 쏘아, 싸움하던 그 옛날의 전쟁에는 그나마 신의 긍휼을 기대할 수 있었다고나 할까. 오늘, 이 무심하고 포악한 전쟁에서 팔을 잃고 다리를 잃는 젊은 병사들을 위한 위로는 어디에 있는가? 팔은 종교적 구원의 상징으로도 인류의 마음에 존재해 왔었는데, 신의 팔은 지금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러고 보니, 팔짱은 나 혼자서 끼는 팔짱만 있지 않다. 어려운 이웃과 함께 끼는 팔짱도 있다. 각자 마음의 팔짱을 깊이 품어 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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