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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마음의 발견> 자수성가(自手成家)의 완성

박인기(경인교육대학교 명예교수/칼럼니스트)

뉴 포커스TV | 기사입력 2024/07/19 [03:11]

<칼럼/ 마음의 발견> 자수성가(自手成家)의 완성

박인기(경인교육대학교 명예교수/칼럼니스트)
뉴 포커스TV | 입력 : 2024/07/19 [03:11]

물려받은 재산이 없이 혼자 힘으로 집안을 일으켜 세우거나 큰 성과를 이루어 놓은 사람을 두고 자수성가(自手成家)했다고 말한다. 자수성가하려면 일단 가진 돈이 없어야 한다. 그래서 ‘자수성가(自手成家)’라는 사자성어는 ‘적수공권(赤手空拳)’이라는 말과 늘 붙어 다닌다. 부잣집 아들로 자라서 자수성가했다는 건 앞뒤가 안 맞는 모순 진술로 들린다.

 

▲     ©박인기 교수

 

가난을 극복하던 산업화 근대에서 우리는 자수성가의 신화를 많이 보았다. 그때 자수성가라는 말에는 광채가 있다. 고난 현실을 넘어서 고지에 오른 사람의 인간 승리를 우리는 읽었다. 자수성가는 성공 신화의 주역들에게 부여하는 훈장과도 같은 말이다. 그들에게 배울 점이 많았다. 세상의 평판과 학교의 교과서는 그런 점을 부지런히 가르쳤다.

자수성가한 사람들에게서 배울 점, 그것은 대체로 현실적 지혜에 속하는 것이었다. 위기를 기회로 여긴다. 자신의 분야만큼은 최고의 실력과 열정을 가지고 있다. 무조건 된다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무모할 정도로 빠르게 행동에 옮긴다. 인간관계가 분명하며, 쓸데없는 인맥은 과감히 끊어낸다. 약자에게 약하고 강자에게 강하다. 뚜렷한 목표와 계획이 항상 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한다. 그야말로 교과서에서 강조할 만한 장점들이 모두 다 모여 있다.

자수성가는 탈근대의 사회로 넘어오면서 빛이 좀 바랜 면이 있다. 아니, 자수성가 자체가 어려워졌다. 절대 가난이 물러가고, 고도 지식‧정보화 사회가 가져온 시스템의 질서가 정착되면서 독불장군식 자수성가의 입지는 좁아졌다. 개인의 인권과 평등과 자유, 그리고 공동체들 사이의 상호 의존(inter-dependent)과 연대가 새로운 질서의 일부가 되었다. 따라서 가치의 다변화를 폭넓게 수용하는 사회 생태에서는 타자들과의 도움과 도움으로 합리적 생산성을 만들어 간다. 혼자서 기질과 의욕만으로 자수성가의 길을 가기가 그만큼 어려워진 것이다.

시민사회의 의식이 옛날식 자수성가의 기질(mentality)을 좋은 쪽으로만 봐주지 않는 쪽으로 변화한 점도 눈에 뜨인다. 같은 현상인데도 시대가 바뀌면서, 좋았던 점도 좋지 않게 보이는 쪽으로 옮겨진다. 과학 패러다임의 변화가 사회‧문화 혁신으로 이어지는 한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수성가에 대한 다음과 같은 분석과 통찰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자수성가한 사람은 사회의 냉혹한 환경과 싸우며 살아왔기에 강인하고 냉철하여, 어떤 느슨함(relax)도 용납하지 않는다. 자수성가한 사람일수록 야망과 목표 중심으로 매진하기 때문에 도덕성보다는 효율성을 앞세운다. 또 타인에게 자신의 방식을 강요하여 독재 스타일이 되기 쉽다. 자신만큼 노력하지 않는 사람을 과도하게 비난한다. 또, 일부는 젊은 시절의 가난을 트라우마로 지니고 있어서 지나치게 돈에 집착하기도 한다.

자수성가한 인물이 다른 이들의 모범이 되는 인품을 갖추게 되는 경우는 실제로 그렇게 흔하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자수성가로 성공한 인물 가운데 이웃과 사회를 위해서 자신의 부를 기부하거나 나누는 사람은 비율상으로 소수라는 것이다. 더구나 꾸준히 일관되게 실천하는 사람은 정말 많지 않다. 그런 인물에 대해서 언론이나 세상이 좋은 평판을 크게 부각하는 것 자체가 그런 일이 너무 드물게 나타나기 때문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본다.

내가 아는 지인 L 대표는 자타가 인정하는 자수성가 사업가이다. 그는 집이 가난하여 중학교를 마치자마자 열다섯 살에 그 당시 돈 5백 원을 지니고 서울로 올라와 공장에서 기름밥을 먹었다. 그가 고등학교를 진학하면 동생들이 중학교에 못 갈 처지였다. 이렇게 시작된 그의 인생 행로는 고난과 좌절로 점철된 고통스러운 자수성가의 길이었다. 가난을 극복하고 못다 이룬 학업의 뜻을 펴자는 일념으로 정신없이 매진해 온 그는 넘어지고 일어서고를 반복하며 자수성가의 자리에 올 수 있었다. 그는 오래전부터 장학재단과 나눔 재단을 설립하여 우리 사회에 이미 선한 영향을 끼쳐 왔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감화와 감사를 또 다른 사회적 자본으로 만들어 내고 있다.

L 대표는 스스로도 자신을 자수성가의 모범 전형으로 생각해 왔었단다. 남들이 자기를 자수성가한 사람으로 말해 줄 때, 어떤 뿌듯함 같은 것이 있었다고 한다. 더 높은 목표와 더 큰 성과를 얻을수록 자수성가한 자부심과 자기 확신이 더 생겨났단다. 그는 고희(古稀)의 나이를 앞두고, 자수성가 사업가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깊은 성찰의 깨달음이기도 했고, 아름다운 지혜이기도 했다. 그가 내게 한 말을 여기 옮겨 본다.

 

“교수님, 자수성가가 도대체 무엇인가요? 이 모든 성과를 정말 내 손으로 다 했나요? 아닙니다. 나를 도와준 사람들 많은데, 내가 그걸 무심히 지나칩니다. 나를 낳아 길러 주신 부모님은 좋은 가르침으로 나를 자수성가로 가도록 해 주신 근원입니다. 제 자서전에 등장하는 잊을 수 없는 은인들, 그리고 지금 이 회사의 직원들을 생각합니다. 저의 자수성가는 자수성가가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많은 분의 손들이 저의 손을 잡아 성공으로 이끌게 했습니다. 자수성가는 없다! 이게 제 생각입니다.”

 

예로부터 자수성가는 하기도 어렵지만, 자수성가를 지키기는 더 어렵다고 했다. 오로지 내 손으로 다 이루었다는 생각에 빠질 때, 자수성가는 미끄러지기 시작하는 것 아닐까. 자수성가의 완성은 자수성가를 부정하는 데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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