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 연구 콜로키움(대표 박인기)은 지난 7월 25일 서울 장충동 소재 ‘종이나라 재단’ 강의실에서 제12차 발표회를 열었다.
이날 발표회는 향토문학인으로 활동을 하며 지역문화 연구에도 노력해 온 민경탁 시인이 <김천의 누정(樓亭)과 누정문학(樓亭文學)>을 주제로 발표하였다. 누정(樓亭)은 누각(樓閣)과 정자(亭子)를 합친 말로서, 누정(樓亭)에는 대(臺), 각(閣), 당(堂), 헌(軒) 등이 포함된다. 민경탁 시인은 우리나라 누정(樓亭)의 특성과 구조와 분포를 소개하고, 누정(樓亭)의 기능과 가치를 설명하면서, 휴양과 유람, 풍류와 감흥, 문인사회 형성, 학문과 수양, 정치 토론, 종회나 동회, 계모임, 사랑방 별장, 활쏘기 수련장, 사신과 빈객 접대, 고을 다스림의 표상, 전쟁 시 지휘 본부 등의 다양한 기능을 소개하였다. 그는 김천의 누정을 다음과 같이 개관하였다. 김천에는 16∼17세기부터 수많은 누정이 산재, 현재 30여 동의 누정이 남아 전한다. 공관용으로 교동의 봉황대, 개령의 팔승정, 숭조용(崇祖用) 누정으로 구성의 방초정·무송정·모성정·미호정, 지례의 만취정, 대덕의 쌍호정이 있다. 조망용 누정으로는 증산의 옥류정, 개령의 낙원정, 자산동의 자운정, 남산동의 남산루, 교육 및 종교용 누정으로 지례의 사반루, 직지사의 만세루·황악루, 청암사의 정법루 등등이 있다. 누정(樓亭)에는 여러 문인 묵객의 시와 문장이 있어서, 이것이 시간을 넘고 공간을 이어서 문화적 소통을 이루어 나가게 했음을 민경탁 시인은 다양한 시문 사례를 통하여 보여 주었다.
민경탁 시인은 김천지방 역사에서 가장 먼저 나타난 개령의 무민루(撫民樓)를 언급하면서, 세종 때에 좌의정을 지낸 이원(李原, 경남 고성 태생)이 경상도관찰사 재임시(1408-1409) 중에 무민루에 올라 시 「제개령문루(題開寧門樓)」를 소개하였다. 또 현존 김천의 누정 가운데 가장 역사가 깊으며 대표적인 문중 건립 누정인 방초정(芳草亭)을 소개하였다. 조선 중기(1625년)에 이정복(李廷馥 호 芳草 1575〜1637)이 구성 원터마을 입구에 세운 정자로, 이후 여러 번 훼손과 중수가 있었다. 방초정과 함께 전해지는 이수원(李遂元 1734∼1815)과 조선 말기의 유학자 송병선(宋秉璿 1836-1905) 등의 칠언율시를 함께 감상하였다. 수도산에서 발원한 대가천의 최상류부, 김천 증산 유성리를 지나는 대가천 오른쪽 기슭에 있는 옥류정(屋流亭)과 관련해서는 정구(鄭逑, 1543~1620)의 「무흘구곡가」 제6곡을 감상하였다. 또 구성 황악산구곡 입구 상좌원의 굴암(屈巖)에서 유래하여 현재의 모성산 아래 모성암 위로 이건한 모성정(慕聖亭)은 황악산 구곡의 절경으로 인해 여러 편의 한시와 가사문학 작품이 탄생했는데, 이날은 윤희배(尹喜培 1827-1900)의 양반가사 「황산별곡」 일부를 감상하였다.
김천 8경의 하나, 교동 봉황대(鳳凰臺)에 대해서도 그 유래와 변천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과 함께, 유호인(兪好仁)의 한시, 이성순의 봉황대시, 이대원(李大遠)의 한시 등 관련 문학 작품들을 음미할 수 있었다. 민경탁 시인은 유교문화의 유산으로서 전통화한 누정(樓亭)과 누정문학(樓亭文學)에는 선대 선비 계층의 삶과 가치관, 의식, 그리고 그들의 문화적 취향 등이 스며 있음을 강조하며, 발표를 마쳤다. 글 : 박인기 교수 <저작권자 ⓒ 뉴 포커스TV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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