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말의 숲을 소요(逍遙)하듯 거닐어 봅니다. 그것은, 고향의 ‘사람’과 고향의 ‘공간’에 대해 깊은 감수성(sensitivity)을 기르는 일에 닿아 있습니다. 오늘날 ‘감수성’은 교육받은 사람의 핵심 역량(core competence)이라는 개념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즉 느낌과 감정에 매달리는 감수성이 아니라, 상당한 이지적 명민함을 포함하는 통찰의 개념으로 심화하고 있습니다. 김천말을 향하는 우리의 감수성도 고향의 정서와 문화를 이지적으로 감득하는 데에 가 닿기를 구하면서 김천말의 숲을 거닐어 봅니다.
김천말은 억세지 아니한 순하고 비교적 평평한 억양을 가진 말입니다. 그렇다고 어떤 억눌림 같은 것에 길들인 말은 더더욱 아닙니다. 특별히 살갑지는 못해도 굴곡 없고 순한 편입니다. 그러면서 질박하고 꾸밈이 없는 그런 표정을 읽게 합니다.
제 오랜 경험 규칙으로는 김천 사람들의 평균적 김천말은 꾸밈이 없는 편입니다. 물론, 있는 대로 속을 다 드러내 보이는 그런 말도 아닙니다. 필요치 않은 것은 되도록 줄이면서, 이심전심(以心傳心)을 추구하는 매력도 가지고 있는 말입니다. 굳이 드러내지 않더라도 알아서 전달되고 받아들이는, 소통 전통이 있는 듯합니다. 이를 김천 사람의 언어 교양 일면으로 보고 싶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강한 부정이나 강한 긍정은 그 자체가 좀 쑥스러운 것으로 인식되는 그런 말이기도 합니다. 전통은 그러한데, 요즘 김천말의 변화적 역동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김천말이 보여 주는 매력 있는 화용(話用)으로서 나는 ‘화해와 권면의 어조’를 들고 싶습니다. 즉 화해를 시키는 말을 할 때 김천말의 어조가 효과적이라는 것입니다. 또 남에게 무언가를 권하여 힘쓰게 하는 말을 할 때도 김천말의 어조가 무언가 미덥습니다. 제 제 경험의 축적 속에는 그런 인상이 도드라집니다. 갈등의 두 당사자를 화해로 이끌어 주는 말로써 나는 김천말의 어조(語調)가 발휘하는 설득의 힘을 인상 깊게 생각합니다. 이는 물론 내가 김천에서 자란 김천 사람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편견일 수 있습니다.
화해를 권하는 말의 수사(修辭)가 화려하지는 않지만, 오해와 불신을 풀고 화해의 자리로 나와 앉게 하는, 매력을 나는 김천말에서 여러 번 경험해 보았습니다. 이는 결국 김천말의 특성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김천 사람들 인성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는 교양과 덕성이 있는 이상적 김천인의 바람직한 언어생활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김천말의 종결어미 '-여'는 김천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자연스러운 언어입니다. 혹자는 이러한 말투가 일종의 촌스러움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 촌스러움의 뒷면에 가장 김천다운 정서와 뉘앙스가 깔려 있습니다. 어설픈 서울말 투에서 벗어나 김천 사람 특유의 의사소통 분위기가 ‘-여’를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데서 만들어집니다. 김천말은 화용(話用) 측면에서 특별히 싹싹하거나 감정을 넘치게 드러내는 것을 보기 어렵습니다. 담백하고 꾸밈이 없는 언어 구사가 김천말의 기본값이라는 점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향토 출신 시인이신 정완영 선생의 시조 언어의 저 깊숙한 곳에서는 김천 말의 향취와 김천말로 품는 발상과 표현이 와 닿습니다. 저는 그분의 시조를 읽을 때면 제 가슴에 고향이 잦아들어 오는 것을 느낍니다. 김천말의 미묘한 자질들이 그분의 시조 구절구절마다 보일 듯 안보일 듯 숨어 있습니다.
오늘날 대중 매체의 발달로 각 지역의 언어는 표준어도 비표준어도 아닌, 그 어떤 양상으로 광범위하게 통합되고 있습니다. 김천 어린이들도 학교에서는 텔레비전을 통해 익숙해진 서울말 투에 가까운 김천말을 씁니다. 지역 전통의 서정과 신통 오묘한 뉘앙스가 담긴 김천말의 모습도 은연중에 조금씩 사라지고 있습니다.
예전에 김천에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명절이면 김천에서 자란 우리집 4형제는 어김없이 김천으로 모입니다. 서울, 대전, 대구, 부산으로 각기 직장과 주거지를 가지고 있는 제 형제들입니다. 각자 현재 사는 지역의 말이 얼마간 녹아든 변용된 김천말이 불쑥불쑥 튀어 나옵니다.
고향을 지키는 부모님의 말이 표준 김천말로서 우리 사형제의 변용된 김천말을 은연중에 교정합니다. 그리하여 이런저런 담소로 한나절을 보내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40년 전 저편 우리를 키워 냈던 김천말의 순정한 영역으로 들어와 있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확실히 고향 김천에 와 있음을 온몸으로 확인합니다. 아버지가 살아 계시던 25년 전까지는 그러했습니다. 지금 나의 김천말은 더욱 변하여 다른 말과 중화된 이상한 김천말이 되었습니다. 문득 그때가 그립습니다. <저작권자 ⓒ 뉴 포커스TV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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