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좀 말이 안 되는 듯한 질문을 던져 본다. 구월이 오는 소리를 실제로 들어 본 사람이 있는가. 구체적으로 들어 보았는가. 구월은 어떤 소리를 대동하고서 오는가. 다른 달, 이를테면 3월이나 12월 같은 달들도 어떤 소리를 내면서 오는가? 그 이전에, 구월이 오는 소리는 현실로 존재하는 소리인가. 실재하지도 않는 소리를 어떻게 듣는단 말인가.
이렇게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세상만사를 실제로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현실의 차원에서만 대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은 없다. 인간은 오묘한 존재이다. 인간은 현실의 실제를 중시하는 만큼, 그 실제를 넘어서는 상상의 세계도 못지않게 중요하게 여긴다. 실제의 현실 세계와 마주하며 동시에 그것을 넘어서려는 상상과 마음의 세계를 향해 나아가려 한다. 그래서 인간이다. 인간의 정신적 고상함이 그래서 귀하고 아름답다.
그러므로 구월이 오는 소리는 우리의 마음에 있다. 귀로는 비록 들리지 않아도, 마음으로 들을 수 있는 것이다. 구월을 맞는 자리에 각자 자신만의 추억과 소망에 맞물리는 마음의 자리가 있다면, 그때 울려 오는 소리가 구월이 오는 소리 아니겠는가. 내 인생의 계단 어디쯤서 만났던 그때 그 사랑의 구월이 지금은 그리움과 쓸쓸함과 아련함과 돌아갈 수 없는 아쉬움으로 내 마음 안으로 그 어떤 고즈넉한 우울의 음조를 빚어낸다면, 그것이야말로 내 안에서 울려 퍼지는, 구월의 소리 아니겠는가. 이렇듯 마음의 결을 이루어 흘러가는 서정(抒情)이야말로 그 어떤 것 못지않은 인생의 자산이다. 생의 복됨과 가치를 추구하는 방식은 내 주관 안에서 비롯한다.
노래 ‘구월이 오는 소리’는 한국의 대표 가수 패티 김이 불렀다. 이 노래가 발표된 해는 1967년이다. 이 해는 내가 고3 때이었는데, 나는 그때 이 노래를 알지 못했다. 그냥 알지 못한 것이 아니라, 이런 노래가 있는지도 몰랐다. 이 노래가 지닌, 사랑의 쓸쓸함과 담담한 듯 그치지 않는 서정의 의미를 깊숙이 느끼면서, 내가 이 노래에 정겹게 다가간 것은 그로부터 10년 뒤쯤 1970년대 후반쯤이었던 것 같다.
‘구월이 오는 소리’는 인생에서 무성한 열정이 지나가는 자리 뒤에는 조용히 침잠하는 조락(凋落)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음을 미리 알아버리는, 그 쓸쓸한 예지(叡智)의 서정을 담아내는 노래이다. 그런 차분한 우울을 저렇듯 고상한 음률에 실어낼 수 있음에 나는 그만 이 노래에 기울어진다. 그렇게 친근해진 이 노래 ‘구월이 오는 소리’는 어느덧 나의 애창곡이 되었다.
길옥윤이 작곡하고 패티 김이 부른 노래 ‘구월이 오는 소리’는 이 두 사람이 결혼한 이듬해인 1967년에 발표되어 대중들에게 크게 어필하였다. 멜로디에 고전풍의 고상한 분위기가 있어 모종의 격조를 느끼게 할 만했다. 노래 가사 중에 “가로수에 나뭇잎은 무성해도/우리들의 마음에 낙엽은 지고”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사람들은 이 구절에 두 사람의 헤어짐이 진작에 숨어 있었다고들 했다. 노래가 가는 길과 가수가 가는 길을 누가 조종하듯 관장할 수는 없으리라. 다만 생의 모순과 운명의 부조리는 인생의 영원한 주제가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이 노래는 “헤어져도(서) 그립다.”라는 사랑의 모순적 방정식을 세상 사람들에게 내어 보인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에 기꺼이 동의한다. 때로는 통속이 얼마나 더 솔직하고 순정한가 하는 생각도 한다.
이제, 구월이 온다. 우리 각자의 마음으로 다가오는 구월의 소리를 향해 마중 나가자. 구월을 무심하게 대하지 말고, 그를 향해 유정하게 다가서자. 더러 통속에 끌린다 한들 어떠하리. 그러나 꼭 통속만은 아니다. 시절의 변화를 느끼고 들으려는 것만으로 우리는 우주와 교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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