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책 사이의 거리는 멀다. 집안 살림을 감당하는 주부이기도 해야 하는 엄마에게 책은 호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주부의 책 읽기를 무슨 호사 부리기의 일종으로 생각하는 발상이야말로 낡은 것이다. 주부와 책 사이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살림도 잘하고 육아도 잘하고 가정교육도 잘하는 쪽으로 가게 된다는 믿음이 옳다. 살림 현실이 만만치 않기는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동서양의 유명 화가들이 ‘책 읽는 소녀’나 ‘책 읽는 여인’을 그린 그림은 있어도, ‘책 읽는 엄마’를 다룬 그림은 드물다. ‘책 읽는 여인’ 등의 그림도 작품 전체의 미적인 구도를 따라가다 보면, ‘책’보다는 ‘여인’에 화가의 시선이 가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엄마는 살림하는 주부이다. 살림하기와 책 읽기는 이처럼 서로 낯설기만 한 것인가. 텔레비전 드라마에도 ‘책 읽는 엄마’는 좀체 나오지 않는다. 드라마가 그렇다는 것은 세태가 그렇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드라마에 ‘책 읽는 할머니’가 나온 적이 있다.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2016년 무렵에 SBS 주말 드라마로 방영된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그래, 그런 거야>에는 그저 틈틈이 시간 나는 대로 책을 읽는 할머니(강부자 출연)가 나온다. 극 중 그녀가 읽는 책은 교과서 종류의 책인 듯하다. 물론 할머니의 책 읽기가 이 드라마의 핵심이지는 않다. 치매 방지 습관 정도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 나는 이 장면이 반가웠다. 시청자들이 ‘책 읽는 할머니’의 모습을 노후 본인의 잠재적 독서 모델로 내면화해 두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했다. 보통 텔레비전에는 ‘책 읽는 엄마’ 대신 무언가 화난 엄마가 자주 등장한다. 공부하라고 닦달하는 엄마는 더 자주 나온다. 그게 마치 엄마의 전형이라도 된다는 듯 보여준다. 일상이든 드라마이든 ‘책 읽는 엄마’를 찾기 어려운 데에 비해서, ‘자녀에게 책을 읽히려고 애를 쓰는 엄마’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자기는 하지 아니하면서, 남들에게는 하라고, 그렇게 말하기는 쉽다. 오죽하면 의사 선생님의 처방 말씀을 따르면 오래 살지만, 의사 선생님의 행동 습관은 따르지 말라는 말도 있겠는가. 독서와 글쓰기도 말로는 쉽지만, 실천으로는 어렵다. ‘고전’을 두고서 “자기는 읽지 않으면 제자나 자녀에게는 읽기를 강요하는 책”이라고 한 풍자적 정의가 정말 무릎을 치게 한다. 딱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감이 난다. 독서 실천이 쉽지 않음을 꼬집은 말이다. 그런 줄 알면서도 엄마들은 자녀들에게 책을 읽히려고 애를 쓴다. 독서교육 강연을 하고 나면, ‘책 읽히려는 엄마’들의 자녀 독서 상담을 내게 청한다. 아들 아이에게 책을 읽히려는 그녀들의 독서 상담은 간절하고 진지하다. ‘책 읽는 엄마’는 ‘책 읽히려는 엄마’와 따로 있지 아니하다. 아이들은 엄마를 따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 읽히려는 엄마’와 ‘책 읽는 엄마’는 반드시 같지는 않다. 아니 따로 갈 때가 많다. 이 대목에서 엄마들의 고민이 생긴다. ‘책 읽히려는 엄마’에 골몰하다 보면, 때로 ‘책 읽는 체하는 엄마’를 연출해야 하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 요즘 아이들은 정말로 영특하여 ‘책 읽는 체하는 엄마’를 본능적으로 분간해 낸다. 당장은 모른다고 해도 언젠가는 기어코 알아차린다. 한번 ‘책 읽는 척하는 엄마’로 찍히면, ‘책 읽히려는 엄마’의 노력은 설 자리가 없어진다. 자녀들은 순식간에 엄마의 진짜 모습을 닮아 버리기 때문이다. ‘책 읽는 엄마’는 자녀들이 독서로 성장하려고 했을 때, 자녀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이상적 모델이다. 동시에 ‘자녀에게 책을 읽히려는 엄마’가 추구해야 할 표준 모델(standard model)이다. 이 모델은 세월이 바뀌어도 좀처럼 변하지 않는 항구적 모델(everlasting model)이기도 하다. (경인교대 명예교수) <저작권자 ⓒ 뉴 포커스TV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
많이 본 기사
박인기 교수의 마음의 발견 많이 본 기사
|